경주국립공원 남산 문화재 관람 하기
◈일시:2014.08.16.(토요일)09:30~16:00
◈날씨:흐림
◈관람코스:삼릉~냉골~석불좌상~선각육존불외~석조여래좌상외
~상선암~마애석가여래좌상~바둑바위~상사암~금오산~사자봉
~상사바위~금오정~용장리갈림길~탑기단~용장사삼층석탑외~
용장사지~설잠교~용장계곡~용장리~삼릉원점
◈경주 남산 안내도
삼릉주차장(큰길 건너야 됨)
◈안내원이 있어 등산지도와 설명도 해 준다.
삼릉가는길
삼릉 소나무숲 (남산팔경 중 하나라네요.)
◈삼릉(배동)
경주군 남쪽 배동 배일산(拜日山)의 세 왕릉 중 맨 위의 왕릉이 아달라 이사금의 능이고 가운데는 신덕왕릉, 맨 앞은 경명왕의 능이라 한다
1.아달라왕(8대왕)
아달라이사금(재위기간:154~184년)은 신라의제8대 국왕이며, 상대의 마지막 박씨 군주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일성왕의 맏아들로 어머니는 지소례왕딸 박씨이며, 왕후는 지마왕의딸인 내례부인 박씨이다. 3년(156년) 계립령(문경새재)을 열고 4년(157년)에는 감물현과 마산현을 두었으며, 3월에 장형진을 순례했다. 5년 죽령의 길을 열었으며, 9년 사도성을 순례해 병사를 위로하였다.
12년 아찬 길선이 모반하여 발각돼 백제로 도주하여 범인을 인도요청하였으나, 백제가 거절하자 친히 백제를 공격하였으나 공성전을 벌이던중 식량이 떨어져 퇴각하였다. 2년뒤14년 백제가 신라를 기습공격하여 2성을 함락시키고, 백성1,000명을 잡아 갔다.
8월에 일길찬 흥선을 시켜 군사2만명으로 백제를 공격하고 왕도 친히 군사8천을 거느리고 한수를 건넜다.
이에 백제는 노략질한 백성을 반환하고 강화를 청하였다고 한다.(이 길선의 모반은 신라 역사상 최초의 반란사건임)
19년(172년) 정월에 구도를 파진찬, 구수혜를 일길찬으로 삼았다. 구도는 훗날김씨로서 최초의 신라왕으로 즉위하게되는 미추의 아버지이다. 31년(184년) 봄 3월에 왕 사망하다.
2.신덕왕(53대왕)
신덕왕(神德王, ? ~ 917년, 재위: 912년 ~ 917년)은 신라의 제53대 왕이다. 성은 박(朴), 이름은 경휘(景暉 또는 景徽)이다. 아버지는 선성대왕 예겸(乂兼 또는 銳謙)이고, 어머니는 정화부인(貞花夫人)이다. 예검은 의부이고 친아버지는 흥렴대왕(興廉大王)으로 추봉된 각간 문원(文元)이라고도 한다.
12년, 전왕 효공왕에게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후고구려의 궁예(弓裔), 후백제의 견훤(甄萱) 등의 세력에 침식당해 신라는 쇠퇴할 뿐이었다.
즉위한 해에 왕은 아들 승영(昇英)을 태자로 세우고, 이찬 계강(繼康)을 상대등으로 삼았다.
914년에 북쪽에서 궁예가 국호를 태봉으로 고치고, 연호를 수덕만세(水德萬歲)에서 정개(政開) 원년으로 고쳤다.
《삼국유사》는 신덕왕 즉위 4년인 을해(915년)에 영묘사(靈廟寺)의 내행랑에 까치의 둥지가 34군데, 까마귀 둥지가 40군데나 되었으며, 3월에는 두 번이나 서리가 내렸고 6월에는 참포(斬浦)의 물과 바닷물이 사흘 동안이나 싸웠다고 전하고 있다.
5년(916년) 가을 8월에는 후백제의 견훤이 대야성(大耶城)을 공격하였으나 이기지 못하였다.917년에 죽었다
3.경명왕(54대왕)
경명왕(景明王, ? ~ 924년, 재위: 917년 ~ 924년)은 신라의 제54대 왕이다. 성은 박(朴)씨, 이름은 승영(昇英)이다. 신덕왕(神德王)과 의성왕후(義成王后)의 아들이며 경애왕(景哀王)의 형이다. 왕비는 장사택(長沙宅)이며, 각간 대존(大尊)의 딸이다.
경명왕 때에는 신라의 국운이 기울어가고 있었다. 실제 신라왕실은 왕경(王京)인 경주를 중심으로 한 그 주변지역을 다스리는 데 불과하였고, 나머지는 궁예(弓裔)와 견훤(甄萱) 등 지방세력에게 빼앗겼다. 특히, 918년(경명왕 2)에 일어난 현승(玄昇)의 반란으로 신라는 그 운명을 더욱 재촉하게 되었다. 같은해 궁예 휘하의 인심이 돌변하여 왕건(王建)을 추대하였고, 궁예는 피살되었다. 그 뒤 왕건과 견훤이 패권을 다투게 되었으나, 이들의 패권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이들과 신라왕실과의 연결이었다. 따라서 안동이나 합천지역에서 이들의 패권다툼이 치열하였으나, 싸움은 결국 해상권을 장악한 왕건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었다.
또, 경명왕 때에는 여러가지 변괴가 있었다고 하는데, 919년 사천왕사(四天王寺)벽화의 개가 울었고, 927년에 황룡사탑(皇龍寺塔)의 그림자가 사지(舍知) 금모(今毛)의 집 뜰에 열흘이나 머물렀으며, 사천왕사 오방신(五方神)의 활줄이 모두 끊어지고 벽화의 개가 뜰로 쫓아나왔다는 기록들이 그것이다. 이러한 설화기사의 이면을 생각해볼 때, 당시 신라의 국운이 기울어져가는 불안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재위 7년 만에 죽으니 황복사(黃福寺) 북쪽에 장사지냈다.
◈남산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2000년 12월 지정)
첫불상인데... 머리가 없네요.
마음이 아픕니다.
냉골(삼릉)
◈삼릉 석조여래좌상
◈삼릉계곡 마애관음보살상(三陵溪谷磨崖觀音菩薩像)
(시도 유형문화제 제19호)
경주 남산의 삼릉계곡에 있는 이 불상은 돌기둥 같은 암벽에 돋을새김한 것으로 연꽃무늬 대좌(臺座)위에 서 있는 관음보살상이다. 머리에는 보관(寶冠)을 쓰고 있으며, 만면에 미소를 띤 얼굴은 부처의 자비스러움이 잘 표현되어 있다. 손에는 보병(寶甁)을 들고 있어 보관과 함께 이 불상이 현세에서 자비로써 중생을 구제한다는 관음보살임을 알 수 있다. 불상 뒷면에는 기둥 모양의 바위가 광배(光背) 역할을 하고 있는데, 자연미에 인공미를 가한 느낌이다. 이 불상은 정확한 연대와 조각자가 알려져 있지 않으나, 통일신라시대인 8∼9세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선각육존불 가는길
◈삼릉계곡 선각육존불(三陵溪谷線刻六尊佛)
(시도유형문화제 제21호) ...석가삼존불(우측)과 아미타삼존불(좌측)
선각육존불 탁본
삼릉계 선각여래좌상 가는길
◈삼릉계곡 선각여래좌상(三陵溪谷線刻如來坐像)
(도유형문화재 제159호)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삼릉계곡에 있는 높이 10m가량 되는 바위에 새겨진 앉아 있는 모습의 여래상이다.
서쪽을 향하고 있는 불상은 몸은 모두 선으로 그은 듯이 새기고 얼굴만 도드라지게 표현한 독특한 조각수법을 보이고 있다. 이 불상은 고려시대에 새긴 것으로 추정되며 이런 유형의 불상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석굴
◈남산 삼릉계 석조여래좌상(慶州 南山 三陵溪 石造如來坐像)
(보물 제666호)
통일신라시대의 석불좌상. 불상 높이 1.42m, 대좌 높이 0.96m, 총 높이 2.38m이다. 대담한 상체에 비해서 허리는 빈약하다. 광배(부처에게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장식)와 대좌를 갖춘 완전한 형태의 불상이었으나, 발굴 당시 광배의 윗 부분이 파손된 상태로 불상의 대좌 뒤쪽에 방치되어 있었다. 양손은 항마촉지인(오른손을 무릎 위에 얹어 손가락 끝으로 땅을 가리키고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해서 배꼽 앞에 놓은 모양. 부처가 마귀를 항복시키고 깨달음을 이루는 것을 상징한다)을 취하고 있고 결가부좌한 모습이다. 가사는 왼쪽 어깨에만 걸쳤는데 가슴과 팔에 걸쳐진 옷 주름과 두 다리 사이로 늘어진 부채꼴 형 주름은 아름답고 섬세하다.
삼릉계(냉골)에서
바위에 문양이...
상선암 가는길
상선암(대웅전)
◈상선암 선각보살입상
위에서 본 상선암
◈바둑바위(신선들이 이곳에서 바둑을 두었다 합니다.)
바둑바위에서
◈금송정앞 바위
◈금송정
옥보고(신라음악의 개척자):
신라에서는 경덕왕때 사찬 공영의 아들 옥보고가 금오산 마루턱 소나무가 잇는 정자에 올라 늘 거문고를 타고 놀았다.
그래서 그곳을 금송정이라 하였다 한다.
마애석가여래좌상 가는길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三陵溪谷磨崖石迦如來坐像)
(시도 유형문화재 제158호)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의 거대한 자연 바위벽에 새긴 앉아 있는 모습의 석가여래불로 높이는 6m이다. 몸을 약간 뒤로 젖히고 있으며, 반쯤 뜬 눈은 속세의 중생을 굽어 살펴보는 것 같다. 머리에서 어깨까지는 입체감있게 깊게 새겨서 돋보이게 한 반면 몸체는 아주 얕게 새겼다.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에 유행하던 양식의 마애불로 추정된다.
상사암 가장 작은 불상
- 석불입상
이 석불입상은 경주 남산에서 가장 작은 불상입니다.
오른손은 시무외인을, 왼손은 여원인을 하였습니다. 법의는 통견으로, 옷 주름이 'U'자형으로 흘러내렸습니다. 아래쪽에 돌출부가 있는 것으로 보아 불대좌에 꽂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조성 시기는 통일신라시대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돌부처님은 머리도 없고, 몸체도 심하게 닳았습니다. 얼핏 보면 그냥 평범한 돌덩이로 보일 수 있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라면 언젠가는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이 돌부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몸을 나투시기 이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있습니다. 이럴진대 우리 중생이야 뭘 더 말하겠습니까?
◈상사암
상사암(남자)
상사암(여)
상사바위서 본 마애석가불
순환도로 가는길(화장실이 있슴)
금오산으로 가지않고 금오정 전망대로 발길을 돌렸다.
순환도로 헬기장
밤송이야 무럭무럭 자라렴
팔각정터, 사자봉 가는길로
◈팔각정터
멀리 금오정이 보인다.
◈사자봉
남산 금오봉 가는길 바위들
◈상사바위
상사바위 전설 입니다.
금오정이 다와 갑니다.
금오정입구는 암릉길 이군요.
◈금오정
금오산 가는길(다시 왔던길 순환도로를 따라 올라 갑니다.)
◈금오산(해발468m)
금오산 정상석 뒷면에 한시가 있네요.
남산과 망산 읽어보세요.
약수골방면 가는길...다음에 가자...
오늘은 용장골로 갑니다.
무슨나무 열매인고? 너무 이뻐서 ...
순환도로를 따라 내려갑니다.
◈용장사지로 간다.(순환도로에서 갈림길)
용장골 설명
용장사지 가는길
올해는 도토리가 풍년입니다.
이제 암반길이다.
용장곡 암릉이 남산팔경중 하나랍니다.
◈용장골 탑기단
갈림길서 어려운 탐방로 로 간다.
◈용장사곡 삼층석탑(茸長寺谷 三層石塔)
(보물제186호)
다
용장사는 매월당 김시습이『금오신화』를 쓰며 머물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현재 몇 군데의 석축(石築)이 남아있어 절터였음을 짐작하게 해줄 뿐이다. 절을 감싸고 뻗은 동쪽 바위 산맥의 높은 봉우리에 서 있는 이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세워진 3층 석탑이다. 자연암석을 아래층 기단으로 삼고, 그 위로 바로 윗층 기단이 올려져 있다. 즉, 자연암석이 아래층 기단일 수도 있고 그 아래 바위산 전체가 또한 아래층 기단일 수도 있는 셈이다. 윗층 기단은 네 모서리와 중앙에 기둥조각을 새기고 2장의 판돌로 덮어 기단을 마감하였다. 탑신(塔身)은 지붕돌과 몸돌을 별도의 석재로 조성하였다. 1층 몸돌은 상당히 높은 편이고 2층부터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각 층 4단이고 처마는 직선을 이루다가 귀퉁이에서 경쾌하게 들려 있다.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없어져 원래의 상태를 알 수 없고 쇠막대를 꽂았던 구멍만 남아 있다. 쓰러져 있던 것을 1922년에 재건하였는데, 사리장치는 없어진 지가 이미 오래되었다고 한다. 각 부의 조화가 아름다우며 주변 자연과의 조화 속에 장관을 이루고 있는 통일신라 후기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삼층석탑 옆
삼층석탑 앞
하산길은 암반과 침니로 밧줄이용...위험구간임.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茸長寺谷 石造如來坐像)
(보물제187호)
통일신라시대 석불좌상이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나오는 승려 대현과 관련된 불상이라는 점에서 8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자연석 위에 3층으로 쌓아 올린 둥근 대좌위에 왼손에 보주를 얹고 결가부좌를 한 모습으로 용장사를 내려다 보는듯 앉아 있다. 불상 자체는 작으나 대좌가 높아 전체 높이가 높다. 현재 머리는 없어졌고 손과 몸체 일부만 남아있다. 어깨는 넓지 않고 다소 좁은 편이나 당당함을 잃지 않고 있으며, 좌측 어깨에는 매듭지어진 가사끈이 사실적으로 조각되어 있다.
“승려 대현을 따라 얼굴을 돌린 불상”
삼국유사에 승려 대현이 용장사에 머물며 불상 주위를 돌며 기도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그 불상이 ‘경주남산용장사곡석불좌상’이라는 이야기가 전한다. 대현이 불상 주위를 돌며 기도하면 불상도 그를 따라 얼굴을 돌릴 만큼 그의 법력이 높았다고 전한다.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茸長寺址 磨崖如來坐像)
(보물제913호)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으로 용장사지석불좌상(보물 제187호)의 뒷면 바위벽에 새겨져 있다.
연꽃대좌위에 결가부좌로 앉은 자세를 하고 있으며 머리광배와 몸광배(光背. 부처에게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장식)를 두 줄로 표현하고 있다. 몸광배 왼쪽에는 불상을 만들 때 새긴 10자의 글자가 있으나 마모가 심해 읽기는 어렵다. 어깨에서 흘러내리는 옷자락무늬가 잔잔하고 단순하게 새겨져 있다. 곱슬머리에 상투모양의 육계를 갖추고 있으며 양쪽의 귀는 길게 늘어졌고 얼굴은 웃음을 띠고 있다. 양식과 조각수법으로 보아 등 8세기 후반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석조여래좌상 앞
◈용장사지에서...(주출돌이 있다)
용장사에는 신라 경덕왕 때의 고승 대현과 조선시대 생육신의 한 사람인
매월당 김시습에 얽힌 이야기가 전한다.
단종의 폐위 소식을 듣고 불가에 입문해 전국을 떠돌던 김시습은
경주의 금오산에서 오래 머물렀다고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금오신화』의 산실이 바로 이 용장사이며
그 이름 또한 금오산에서 취한 것이일뿐 아니라,
김시습의 호 매월당도 금오신화에 나오는 시에서
'매화의 달그림자가 창에 가득하다고 한데'
에서 비롯하였다고 한다.
하산길은 암반이 많다.
용장곡 암릉
이제 평탄한길 입니다.
용장골 맑은물
설잠교 (매월당 김시습의 법명이 설잠)
고위봉(이무기능선) 갈림길
아름다운 용장계곡 입니다. 남산팔경중 최고라네요.
뼛속까지 시원합니다.
이 계곡이 3㎞라 하네요....
별도로 상세한것은 계곡편에 올렸습니다. 참조하세요.
용장마을 다가갑니다.
식수
용장계 건너니 이정표가.. (이쪽출발시는 첫 이정표 겠군요.)
복서방네 쉼터...유료주차장 입니다.
용장2길로 가야됩니다. (작은하천따라 동네길이 나옴)
경주국립공원 사무실
용장리서 삼릉주차장까지는 2.5㎞ 라네요...
땡볕에 큰길따라 걸어갑니다.
가다보니 칼국수집이 많아요.
배도 출출해서 갔더니 검은콩칼국수라서 맛있게 먹었슴다.
용장리 주차장
드디어 삼릉이 보이네요.
경애왕릉이 오른쪽에...다음에 가보죠.
감사합니다.
경주국립공원 남산은 불교문화재로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다음에는 미처 못본 남릉코스로 칠불암과 신선암마애불을 보러갈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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