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舜] 임금
순[舜] 임금
중국 전설상의 성제(聖帝). 요(堯)임금과 더불어 태평성대를 이룬 성군(聖君)의 대표적인 임금으로 받들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어려움에 안분하며 부귀에 넘치지 아니한 삶을 산 사람이었다. 소태산대종사는 “예로부터 성현들은 모두 이 인간부귀를 심상시하여 부귀가 온다고 그다지 기뻐하지도 아니하고 부귀가 간다고 그다지 근심하지도 아니했나니 옛날 순임금은 밭 갈고 질그릇 굽는 천역을 하던 사람으로서 천자의 위를 받았으나 거기에 조금도 넘치심이 없으셨다”라고 했다.
순임금은 고대 중국의 전설적인 성군(聖君)으로 5제의 한 사람이다.
성(姓)은 사(사(계집녀 변에 써 이)), 씨(氏)는 유우(有虞). *중국 고대에는 성과 씨가 각각이었음
이름은 중화(重華----눈동자가 둘이라고 해서 얻은 이름임)이다.
황제(黃帝-----중국 고대 왕)의 손자인 전욱의 7대손이라고 하며 동이(東夷)의 땅인 기주(冀州)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어려서는 집안이 가난하여 농사도 짓고 물고기를 잡는 어부가 되기도 했으며 도자기를 굽기도 하는 등 많은 고생을 하며 자랐다. 아버지인 고수는 맹인이었는데 어머니가 일찍 죽은 뒤에 재취하여 계모 사이에서 상(象)이라는 이복 동생을 얻게 되었으나 성격이 매우 방자한데다가 계모가 편애하자 형인 순을 못살게 굴고 심지어는 죽이려고까지 했으므로 순의 괴로움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효성스럽고 지혜로운 순은 그러한 일에 대해 동생이나 계모, 또 아버지를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고 그때마다 슬기롭게 처신하여 항상 무사히 위기를 넘기곤 했다.
마침 임금이던 요임금이 그의 아들인 단주(丹朱)가 불초해서 왕위를 물려줄 만한 인물이 되지 못한다고 판단해서 널리 임금이 될 인재를 구하던 차였는데 나이 비록 20 여세에 불과했음에도 이미 효성스러움과 덕성이 널리 알려진 순의 소문을 듣고 그의 두 딸인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을 순에게 시집보내 순의 인품을 파악하도록 했다.
순은 요임금의 사위가 된 뒤에도 아황과 여영에 대한 태도가 더욱 근엄했으므로 그녀들은 자신들이 임금의 딸이라고 해서 순의 가족들에게 결코 오만한 행동을 하지 못했다.
이에 요임금은 순을 재상으로 발탁해서 일을 맡겨보았다. 순이 맡은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것을 본 요임금은 비로소 안심하고 순을 자신의 후계자로 삼기로 했다. 그래서 요임금은 일단 순에게 섭정하도록 하고 자신은 은퇴했다. 그때 순임금의 나이는 50세였다.
순이 섭정한지 8년이 되던 해 요임금이 붕어하자 순은 왕위를 단주에게 계승시키려고 몸을 도피해 있었지만 천하 제후들이 단주에게는 가지않고 순을 찾아와서 문안을 하고 정사를 상의하는 것이었다. 이래서 할 수 없이 순이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던 것이다.
순임금은 요임금때부터 어진 신하였지만 전문적 직분이 없던 우(禹)/ 고요(皐陶)/ 설(契)/ 후직(后稷)/ 백이(伯夷)/ 익(益)/ 팽조(彭祖) 등에게 일정한 직책을 부여하여 책임있게 정사를 분담하도록 했으며 3년마다 그들의 공과에 대해 평가하니 모두들 공정하고 사심없이 열심히 정사를 보게 되었으며 따라서 백성들로 명령을 거역하는 사람이 없었으므로 천하가 태평하고 안락했다. 이에 다른 부족들까지 순에게 조공을 바치면서 귀의하는 등 천하 사람들 모두가 순의 공적을 숭앙하는 것이었다.
순은 제위에 오른지 39년 되는 해에 남방을 순수하다가 창오(蒼梧)라는 곳의 들에서 붕어했으며 구의산(九疑山)에 장사지냈다.
치수(治水)에 공이 많은 우가 순임금의 선양으로 왕위를 이어받았으니 이 사람이 하(夏)나라의 건국자인데 역시 성군으로 추앙받는 5제의 한 사람이다.